주간 노동시간을 40+12시간으로 제한하는 노동법 개정 이후, 특히 게임을 비롯한 IT 산업에서 경영계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죽하면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이 ‘실리콘밸리에는 출퇴근도 없고 해고와 이직도 일상’이라며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의 일률 도입은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대통령 직속기구의 위촉 위원장이 정부의 정책에 대놓고 반대를 외치는 모양새다.
이러한 경영계의 주장은 마치 회사는 완벽한 인사, 생산성 관리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경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를 해야만 생산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개발 현장의 노동자들이 가혹한 일정에 치여 돌연사 및 과로자살에 이르는 현실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특정 대기업은 신입사원의 근속연수가 1년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생산성의 핵심이 인력이라면 인력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것이 당연한데 장시간 근로와 짧은 근속연수는 곧 회사가 노동자를 그저 부품으로 쓰고 있다는 증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직이 잦아 근속 기간이 짧다는 변명도 있지만 사실과 비교하면 바로 논파된다.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근무 특성과 건강 상태를 점검한 결과 상당수의 인원이 만성 피로와 자살 충동, 우울증 등을 경험하고 있었고, 퇴직자 중 상당수는 번아웃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업무 환경에 대해서는 윗선의 오락가락하는 지시에 수시로 변경되는 개발사항, 개발 변경에 따라 늘어나는 작업 시간이 주로 문제로 꼽혔고, 근무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런 건강 상태에서 생산성이 담보되길 기대하는 것은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길 바라는 것과도 같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노동시간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환상에 가깝다. 실리콘밸리의 일반 노동자들은 오히려 한국 IT 산업 노동자들보다 덜 일하고 더 오래 쉬며 더 많이 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들은 코파운더에 준하는 임원급들로 회사에서 지분 또는 스톡옵션 등의 인센티브를 받고 경영주체의 일부로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회사의 성장과 가치의 상승은 바로 자신의 이익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 IT 산업은 결코 그렇지 않다. 동문 출신인 검사장에게는 공짜로 주식을 헌납하지만 창업 맴버와 사원들에게는 성장의 이익을 분배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경영 문화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것 또한 기업의 책임이다. 별다른 규제 없이 30%를 크게 웃도는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면서도 개발 시스템을 혁신하지 못했다. 관리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작은 조직에 안주했고, 작업량이 늘어나면 ‘크런치모드’를 빌미로 주당 30시간 이상의 추가 노동을 강요했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글로벌 톱티어 게임 제작, 유통사 중 하나인 UBI소프트가 각국 스튜디오의 협업 제작 환경을 구현함으로써 AAA급 블록버스터 게임을 연간 하나씩 출시하는 데 성공했고, 우리의 후발주자로 여겨지던 중국조차 많은 제작사가 빠르고 안정적 개발을 위해 조직의 고용 규모를 늘리고 교대제와 분산개발을 도입했지만 이런 사실은 경영계의 입으로는 듣기 어렵다.
한국의 게임, IT 산업의 경쟁력은 이미 약화되었고,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 시스템에 의한 개발 관리를 도입하지 못한 채 노동자의 역량에 맞춰 개발팀이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만큼 건강과 휴식을 관리받지도 못했고, 그만큼 큰 보상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지도 못했다. ‘실리콘밸리’를 운운하려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게임이 수백억의 매출을 올릴 때 노동자들도 돈방석에 앉았는가? 제조업에는 흔히 존재하는 사내성과급은 과연 어느 기업이 언제쯤 와서야 도입하였는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글로벌 트랜드를 선도하기 위한 연구에 충실하고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가?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중국이 판호의 발급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한국 게임의 수출 실적도 하락이 시작되는 추세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수출로 눈을 돌리고자 하지만 성적, 인종적, 문화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따라가지 못해 온라인 게임의 해외 로컬라이제이션 때마다 갖은 수정과 잡음이 불거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해외의 성공사례조차 제대로 분석해서 수용하기보다는 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기를 계속한다면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란 요원할 것이고, 경영계가 이런 수준의 주장만을 반복한다면 자질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자기 진단을 통해 합리적 해결책을 도출하고, 이를 사회적 합의의 장으로 끌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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