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프리랜서, 예를 들어 야쿠르트 배달원, 택배기사, IT 파견근로자, 보험 외판원, 가정방문교사 등은 사실상 고용된 것과 다름없이 일하면서도 지금껏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로 인정받아오지 못했다.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일방적인 계약해지에서 보호받지 못했으며, 장시간 근로를 묵묵히 견뎌야 했고, 일자리를 잃을 땐 퇴직금조차 받지 못했다. 이에 시민사회 및 노동계, 정치권 일각에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대법원에서 야쿠르트 배달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리는 등 해결의 물꼬가 트이지 않았다.
변화는 놀랍게도 코로나19에서 비롯되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삶의 풍경, 특히 노동환경도 급속도로 변화하였고, 재택근무의 졸속 도입으로 인한 고통, 확진자가 나와도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내 문화, 원치않는 무급휴직을 강요받거나 해직당하는 등 다양한 노동권 침해가 전보다 보다 가까운 일상이 되었다.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재난소득 지급, 이를 위한 증세 등이 활발히 논의되는 것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일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호응하듯, 지난 29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서 기념비적인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다. 중노위는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되어 타다 드라이버 로 일하던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였고, 타다 측의 일방적 계약해지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타다 측에서 일률적으로 작업방식을 지시한 점, 운전기사의 근태 및 배차 관련 지시감독을 해 왔다는 점이 이유였다. 지금까지는 ‘자율적으로 근무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내지는 ‘프리랜서로 계약하였으므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통례임을 생각하면, 심지어 같은 사건을 두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전향적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177석 확보라는 총선 대승을 달성한 후, 고용보험법 개정을 시작으로 각종 노동개혁적 행보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며 또한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당 내에도 4차산업혁명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토대로 노동자 지위가 점점 열악해지는 사업구조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당적을 두거나 공직에 앉은 인물들의 입에서도 ‘52시간 근무시간 제한은 지나치다’ 같은 말이 잊을 만하면 반복되어 나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장만능주의의 환상은 확실히 부서졌다. 포스트코로나 사회는 우리가 좋든 실든 보다 더 숙의민주적이어야 하고, 노동권과 개개인의 인권이 폭넓게 보장받으며 경제적 생존권 또한 기본권의 범주에 포함되는 보편복지국가로의 방향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아울러 방역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개인의 권리가 조금씩 희생되는 K방역의 메커니즘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면, 국가는 시민에게 앞으로는 공권력의 사용이 보다 신중하고 정의로울 것이며, 모든 희생은 공동체의 이익으로 다시 개개인에게 환원되리라는 약속을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번 중노위의 판결이 앞으로 법원에서도 이어지고, 국회에서의 개혁입법으로도 이어져 보다 살 만한 사회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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