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모바일 게임 가디언 테일즈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을 바탕으로 출시 후 매출 5위를 달성하는 등 순항하는 듯 보였던 게임이 흔들린 이유는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게임 내에 ‘걸레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을 사측이 별도의 공지 없이 수정했다가 ‘페미니즘에 휘둘리는 게임’이라는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수정이 대체 왜 문제가 되는지 반박이 들어오자 수정한 ‘광대 같은’이 영화 조커 이후로 남성을 비하하는 용어가 됐다는 주장, ‘게임 출시 후 자잘한 버그 등에 대한 불만은 무시했으면서 여혐 논란에는 빠르게 대처했다는 주장 등이 줄을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나친 해석인데,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심의 시스템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청소년 이용불가(이하 청불) 등급 외의 모바일 게임은 게임위의 사전심의 대상이 아니다. 법률상으로는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 등의 사업자가 자율심의를 통해 등급을 정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등록 시 ‘설문’에 응답하면 추천 등급을 표시해 줄 뿐, 등급은 ‘서비스 주체’인 퍼블리셔가 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모바일로 서비스되는 수많은 게임에 표기된 등급은 실제로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상당수의 서비스사들이 출시 후 게임위의 ‘등급재분류’ 통보에 부랴부랴 내용을 수정하곤 하며, 이에 불응하는 경우 스토어에서 아예 게임이 내려가기도 한다. 이와 관계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도 리니지m일 것이다. 유료재화 거래소가 ‘청불’ 등급으로 재분류되자 서비스 중이던 서버에서는 거래소를 삭제하여 등급을 유지하고, 이후 ‘청불’ 등급의 새로운 리니지m을 출시한 바 있다. 이렇듯 ‘등급 재분류’는 게임 서비스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기에 게임위에 민원이 들어갈 것이 예측된다면 빠르게 수정하는 편이 유리하다. 결코 가벼운 이슈는 아니다.
또한 가디언 테일즈의 게임 내용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대놓고 정치적 올바름(PC)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 meme을 차용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둘이 아니지만 대표적인 것만 꼽자면, 티탄이라는 종족은 학살과 약탈의 대상이 되며 식인의 대상이 되는 듯한 묘사가 나오지만 동시에 ‘허영 많은 티탄’이라는 캐릭터가 황당한 대사를 통해 소위 ‘PC충’으로 묘사되는데다 심지어 여성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다.
성적인 은유 또한 빠지지 않는다. 스토리 중 ‘서큐버스 마을’에 대한 묘사는 집창촌을 연상시킨다. 스토리의 내용은 언뜻 보면 재밌게 각색된 듯 보이지만 이 또한 성매매의 은유로 볼 부분이 많으며, 마을을 이용한 캐릭터들이 얼굴이 붉어지는 묘사 등 보다 직접적인 묘사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서도 이런 성매매에 대한 희화화나 은유를 찾아볼 수 있으나,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려우며 때문에 ‘패러디’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바일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으며, 퍼블리셔의 응답에 따라 기본 등급이 정해진다. 그런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12세 등급은 카카오게임즈의 판단일 것이다. 손꼽히는 대기업임에도 게임 내에 걸레를 비롯해 수많은 조롱과 인격모독적 텍스트가 사용된 것에 ‘언어의 부적절성’이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내용의 폭력성이나 성적 묘사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 게임 산업의 양심에 기댄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게임 이용자들이나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모바일게임에 12세 등급을 빙자한 성인 대상 게임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플의 등급 분류에 15세 등급이 없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하는가 하면, ‘귀여운 그래픽으로 숨겼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매운맛 게임’이라며 내용의 수정이 소비자에 대한 신뢰 배신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요구’에 대한 적대적 반응을 보면 건전성 규제를 정상화하지 않는 게임 산업이 스스로 자정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문화이며 예술이라는 주장은 이번에도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단순히 외부사회의 간섭을 배제하는 핑곗거리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다면 게임 유저는 게임에서조차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어서는 안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우선 시장이 정상적으로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히트작인 GTA5의 경우 게임 내의 선정적이며 폭력적 묘사 때문에 북미에서도 청불 등급을 받았다. 이 경우 광고와 전시 판매 등에 상당한 제약이 따라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제작사인 락스타 측은 게임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유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정 없이 청불 등급으로 출시했던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모바일게임 라스트 오리진의 경우, 게임의 내용이나 표현 방법, 초기의 등급븐류 문제 및 노동권 이슈등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긴 했으나, 게임 운영 면에서는 우선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결정이 뚜렷하며, 묘사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청불 등급을 고수하고 있다. 모든 대중을 소비자로 삼겠다는 욕망을 포기한 것만으로도 코어 이용자를 확보함과 동시에 사회적 요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사례다. 관점을 바꿔보면, 게임을 서비스하면서 자체심의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제도를 어뷰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많은 게임은 충분히 정치적이며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다.
2차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은 심의에도 그 영향이 크게 남아, 최근까지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게임 내에 나치상징물의 사용이 금지되어 왔다. 그래서 소위 '낙지스껌'(nazi와 scum의 합성어) 으로 유명한 유명한 울펜슈타인 시리즈도 게임 내에서는 하켄크로이츠 대신 대체 문양을 사용해야 했으며,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등 나치 선전가요도 삭제되었다. 논란 끝에 지금은 조건부 허용되었으나, 연구 목적이나 나치에 대한 비판목적이 확실한 경우에 한정되는 등 아직도 제약이 많다.
이처럼 게임의 로컬라이제이션에는 ‘원작의 맛’을 살리는 것만 포함되는 게 아니라 목표로 하는 심의 등급과 각국의 사회적 요구도 맞출 것이 동시에 요구된다. 한국 MMORPG들이 예상 외로 유럽 및 북미에서 크게 선전하지 못한 데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과도한 비대칭적 성상품화가 현지의 상황에 맞지 못했던 점이 한몫했다는 지적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무조건 코어 유저들이 원하는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서비스만 만연해 있는 것이 시장의 모습이라면 ‘사회적 요구’라는 영수증을 정산해야 할 날이 점점 가까워질 뿐이다. 게임이 진정 ‘문화예술’이려면 이 영수증을 먼저 스스로 정산해야 한다.
일반적 상식과는 달리 모든 게임은 모티프가 되는 사실이나 인물, 사건 등을 묘사하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정치적일 수 있으며, 게임을 둘러싼 현실은 결코 탈정치적일 수 없다.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받으려는 노력, 게임을 둘러싼 불합리한 규제들을 개선하려는 노력, 심지어 확률형 아이템을 계속 자유롭게 팔고 싶은 퍼블리셔들의 욕심과 탈정치적 재미를 요구하는 소비자들까지 무엇하나 사회와 외따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이 보다 건전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정치적 요구라면, 게임에 그런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정치적 요구이며, PC한 주장이 정치적이라면 PC에 대한 조롱 또한 정치적이다.
성적대상화조차 ‘가상의 매체에서라도 성적으로 끌리는 이성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자유’ 즉 사상과 뗄래야 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명백한 폭력을 줄이고, 우리는 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라스트오리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라스트오리진은 게임위의 사전심의를 통해 ‘청불’ 등급을 받고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서비스 중이었으나 구글과 애플 모두 ‘자체 규정’ 위반을 이유로 게임의 서비스를 금지하였다. 구글은 이전부터 게임위가 심의한 청불 등급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었고, 애플은 앞서 얘기했던 리니지m논란 때 게임위와 협약을 맺고 청불 등급 게임을 서비스하던 중이었음에도 구글과 애플은 국내 영업에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았다. 정부도 소비자도 글로벌 대기업의 명백한 갑질에는 아무말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게임 제작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행위가 만연한 지금, 이는 소비자 운동이라기보다는 또다른 갑질과 폭력적 괴롭힘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는 게임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바뀌어야 한다. 게임산업에 요구하는 방법과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가디언 테일즈의 운영이 논란이 된 후 카카오게임즈가 취한 조치는 결국 관계자의 교체와 게임 내 재화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것이었다. 카카오게임즈가 행한 어뷰징과 본질적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단순히 담당자를 교체하고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위해 보다 더 선명성 있는 행동을 취하고, 게임 내 재화를 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문제 해결로 갈음하는 것은 해결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문제로의 연장이다. 유저는 여전히 랜덤아이템의 착취에 신음하고 있고, 자의적 심의로 인한 게임 내용 변경 리스크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재발 방지또한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발맞춰 게임을 제작하는 종사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게임 소비자들이 외부의 개입을 거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제작에 몸담는 이들이 이와 같은 라인에 서서 ‘게임은 그저 유흥일 뿐인데 내용을 개선하라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며 부적절한 내용을 전체연령가 및 12세 이용가 등으로 출시하는 것은 제작자로서의 직업윤리를 버리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직업윤리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행동을 한다고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 meme이나 혐오 차별을 그저 재밌다는 이유로 문제의식 없이 차용하고,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설계를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눈감고 적용해서는 더이상 안된다. 내부에 노조 등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자정 요구가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산업’의 위기가 표면화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디언 테일즈의 한 장면, 이성에게 인기 없는 남성에 대한 조롱 및 섹스로이드에 대한 meme이 그대로 차용되어 있다]
게임을 이용하는 문화 또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일찍이 게임과 관계있는 질병코드 등록 때, WHO가 게임 중 보이는 폭력적 행동, 기물파손, 게임을 현실의 생활보다 우선시하는 행동 등을 문제시하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아울러 게임 내에서 흔히 발견되는 조롱 등 폭력적 채팅문화와 무분별한 meme의 사용 등도 이대로 넘어갈 수만은 없는 문제다. 일례로 흔히 게임에 과몰입한 이들이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겜창’이라는 단어는 ‘부스럼이 난 여성기’를 일컫는 ‘씹창’에서 온 말로, 어원이 매우 속되며 성적이다. 이러한 단어의 사용과 조롱, 비아냥, 혐오가 자연스러운 게임 내 문화로 자리잡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경계해 오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21대 국회에 들어오면서 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많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이상헌 의원실에서 폭넓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설문조사 형’ 준자율심의제를 담은 게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전용기 의원실은 이에 더해 사전심의 의무를 폐지하고자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긍정적이려면 기업도 변해야 하지만 역시 변화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의 사정을 중심으로 사전심의 의무의 폐지를 로비하면서 뒤로는 심의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고, 회사의 이익이 된다면 과도한 과금모델도, 유저 간 현거래도, 사행성으로 연결되기 쉬운 확률 강화 시스템 등도 별 문제의식 없이 유지한다.
이러한 기업들의 행보에 스스로의 자성과 변화를 기대하기란 이미 어렵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업의 잘못만은 아니다. 내 월급이 나와서, 게임 산업의 총 매출이 크니까, 그냥 지금 이대로도 재밌는 부분은 있으니까를 이유로 이를 수수방관했다면 정치인, 유관기관, 종사자, 소비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현실을 이렇게 만든 공범일 것이다.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방관자가 되어도, 내가 좋은 것만 취사선택하는 체리피커가 되어서도 안된다.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는 이제 리부트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책임을 질 시기가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면 경착륙보다는 연착륙을 고려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 논란이 된 끝에 삭제된 아우디 광고. 국내 뉴스 댓글들도 대체로 아우디를 질타하는 분위기였기에 대조적인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AUDIOFFICIAL/TWITTER]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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