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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에 부쳐

최근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다시금 민식이법이 악법이라는 여론의 반응이 가열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민식이법을 악법으로 몰아가는 프레임 대부분은 잘못된 상식이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이해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우선 한국의 보행자 100만 명 당 보행자 사망율은 지금도 OECD 최고 수준으로 높아서 평균의 3.3배(2019년 기준)에 달한다. 그리고 흔히 대로에서의 무단횡단 사망자가 많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보행 사망자의 과반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이면도로'에서 발생하며, 특히 도심 주거지에서도 사망사고가 빈번하다. 이러한 주거지 인접 이면도로에서의 과속과 태만 운전은 주택가 인근에 주로 위치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 어린이 보호구역 발생 사망사고에서 운전자의 과실이 현저히 적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식이법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며, 아이들의 잘못이 큰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지금까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중상해, 사망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주의의무를 다했어야 마땅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정 속도를 넘어 과속했거나, 전방주시가 철저하지 않아 사고 후 바로 정차하지 못했거나, 횡단보도 앞 일단 정지 의무를 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의 교통 정책은 지금까지도 속도제한과 보행자 우선도로 신설 등 운전자 입장에서의 편의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여 왔고, 정책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아 실제로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꾸준히 줄어든 결과가 현재 OECD 평균의 3.3배라는 현실은 우리의 운전문화를 반성하기에 너무나도 과한 지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민식이법의 반대 주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드시 실형을 받는다’는 주장은 법적으로 틀린 주장으로, 불안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민식이법은 사망사고 발생 시 3년 이상의 실형 또는 무기 이하의 징역을 ‘법정형’으로 하고 있으며, 별도의 감경사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운전자의 주의 태만이 인정되지 않고 속도와 기타 법규 등도 잘 지켰을 경우 아예 무죄가 선고되거나 또는 50%의 작량감경 범위 내에서 형이 감해져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등도 충분히 가능하다.

법안을 반대하기 위한 방법 자체가 반인륜적인 점도 문제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오는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며 ‘너는 피할 수 있느냐’는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영상을 보면 운전자 과실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실제 운전자 과실이 극명한 사망사고는 애초에 이러한 영상으로 유통될 수 없기에 반론이 불가능한 편견 강화에 그치기 쉽다.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첨예한 법적 분쟁이 일상적이던 자동차 사고가 객관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나, 서로 블랙박스를 장착한 경우가 많은 차대차 사고와는 달리 대인사고는 운전자 측에만 블랙박스가 있어 소위 ‘억울한 과실비율 산정’을 호소하는 경우는 운전자 측이 억울할 경우임이 많음에도, 이런 편향성을 고려하지 않고 영상을 소비한다면 여론 자체가 편향되어 운전자 입장이 과대표된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만 한다. 흔히 온라인에서 가공 유통되는 소위 ‘팩트’는 어디까지나 편집과 발췌, 선택과 집중의 결과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곤 한다.

물론 민식이법 자체의 과도함을 지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청년 세대가 새로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현실로, 나는 아니더라도 주변 지인들이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풍경은 청년 세대에게도 낮설지 않은 풍경이다. 가상의 극단적 사례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억울한 운전자의 양산을 걱정하기보다는 단란한 한 가족의 삶과 아이의 생명이 무너지는 일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법이 정말로 과도하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자극적 영상을 공유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개정입법을 주장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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