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역사는 느리지만 전진한다는 실제 사례가 다시금 등장했다. 국내 최초로 복무 중 성별정정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다. 변희수 하사는 청소년기부터 젠더와 신체적 성별이 불일치하는 ‘젠더 디스포리아’ 현상으로 괴로움을 겪었고, 남군으로 복무한다면 자신의 젠더 디스포리아가 ‘치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사자의 고민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 ‘전환 치료’를 시도하게 만들 정도로 경색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압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변희수 하사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우수 군인으로 선정되었고, 나아가 부대 지휘관들의 이해와 배려하에 성별정정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소속부대 및 상급부대에서도 변희수 하사의 계속 복무를 청원해 왔다. 국가인권위는 변희수 하사의 사례에 대해 긴급구제를 권고하며 육군본부의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열린 시각을 가지고 부하의 인권을 배려한 소속부대와 상급부대 지휘관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결국 퇴행적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트랜스젠더, 나아가 소수자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를 틀어쥐고 있는 제도들이 얼마나 보편 인권에 반하는지에 대한 척도이기도 하다. 육군본부가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을 결정한 근거가 되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의 내용은 고환의 상실과 음경의 상실이 각각 5급 장애로, 이 둘이 결합되면 3급 장애가 되어 심신장애로 인한 복무 부적격으로 판정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고환과 음경의 상실이 군인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냐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남성 생식 능력을 잃었다고 일상 생활에서의 업무 능력에 큰 차질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사자의 전역 또는 계속 복무는 오롯이 당사자의 선택에 맡겨야 하기에, 군 당국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복무 부적격’으로 판단했다면 남성기의 상실은 복무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자는 ‘규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라며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 만약 변희수 하사가 자발적 성별정정수술을 한 것이 아니라 임무 중 사고로 고환과 음경을 손실했다면 여론은 지금과 같았을까? 단언컨대 아니었을 것이다. ‘복무 중 사고로 고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강제 전역이 말이 되느냐’라며 남성 여론은 들끓었을 것이다.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고 이에 대한 우리의 납득과 이해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규정을 그대로 규정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변희수 하사에게 특히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것은 마음 속의 혐오 때문이다. 흔한 이야기다. 이전 기고에서 언급했던 ‘배달 노동’을 체험할 때 배달 노동자 동료 중에 트랜스젠더가 있었다. 회사가 노골적으로 업무배제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를 두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혐오스럽다’며 뒷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뒤에서 수근거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혐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배달 받는 소비자들의 불쾌감을 이유로 꼽았고, 같이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느낄 위화감을 이유로 꼽았다. 혐오의 목소리는 언제나 이렇듯 비겁하다.
혐오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보편 인권을 퇴보시킨다. 혐오하는 자신을 부정하지 말자. 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물이지만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고쳐나가면 언젠가 해결될 문제이다. 사실 하나를 인정하기가 불편해서 변명을 계속하면 이는 퇴보가 되고, 퇴보가 계속되면 벼랑에서 떠밀리는 것은 ‘바로 나’일 수 있다. 역사적 싸움을 시작한 변희수 하사에게 앞으로는 승리와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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