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 법안처리율은 29.4%입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국회 중 최저치입니다. 법안 처리가 국회의 주 의무임을 생각하면 역대 최악의 국회입니다. 그런 와중에 2019년 11월 29일 본회의를 앞두고 상임위를 통해 상정하기로 한 199개 법안 전부에 대해서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자유한국당은 그 역대 최악의 국회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국회가 고수해온 관례를 통한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국회가 존중해온 관례 존중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상임위 위원장 선출 관례입니다.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대하여 법적으로는 국회의원 재적 수의 과반 출석과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필요로 하나, 현실적으로는 국회 의석 수에 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누며, 그렇게 나뉘어진 상임위원장 자리를 통해 각 상임위 소관 법안 처리의 주도권을 쥔 정당끼리 서로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며 법안 처리를 거래해왔습니다. 이는 국정운영이 과반을 차지한 정당도 나머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해나가야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모범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임위 주도 법안 처리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상임위를 통해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법안에 대해선 각 정당이 합의한 것이므로, 상임위를 거친 법안에 대한 이유 없는 방해는 국회의 기본 원리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본회의에 올라올 199개 법안 전부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상임위에서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회의 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99개 법안의 대부분이 무쟁점이며 자유한국당도 본회의에서 의결시키기로 합의한 법안임을 감안하면 자유한국당의 행위는 더더욱 어떤 명분도 가지지 못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조금의 손해도 볼 수 없다며 청년의 삶을 국가가 챙기도록 하는 청년기본법의 본회의 처리를 거부했습니다. 스쿨존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도 외면했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다른 방법으로 복무하며 국가에 기여하도록 하는 길을 막고있습니다. 현대차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수소차를 뒷받침하는 수소경제를 돕는 법안도 막았습니다.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회계를 방치하며 국가 지원금으로 여태껏 그랬듯 사치품, 성인용품 등을 사는 현실도 그대로 방치하고자 합니다. 그 외 수많은, 우리의 삶을 바꿀 법안이 자유한국당의 떼쓰기에 막힌 상태입니다. 필리버스터는 법안당 최소 24시간의 토론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의 떼쓰기가 그대로 인용된다면 자유한국당은 여태껏 그래왔듯(국회 출석율 최저) 정기국회 끝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비를 타갈 것입니다.
현행 국회법과 국회 의석, 상임위 구성 상 이미 벌어진 문제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은 막아야합니다. 상임위원장 분배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따른 국정 운영의 묘는 자유한국당의 오남용으로 큰 허점을 보였습니다. 다음 국회에서는 상임위원장을 각 정당 의석 비례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과 그에 협조하는 정당이 과반을 구성하고 독식한 뒤 법안 처리를 도맡아 하고 그로인한 결과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관례가 야당의 정략에만 치중한 파업과 태업을 전적으로 여당의 탓으로 뒤집어 씌우기에 야당이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데 치중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용납하는데다 실제로 관례를 최대한 악용한 사례가 등장한 만큼 현 상임위원장 선출 관례는 바뀌어야만 합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독단적 국정운영은 어차피 여당의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관례를 깨는 것이 소수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것 또한 아닙니다. 어차피 필리버스터가 야당의 권익을 보호해 줄 것인 바, 상임위 구성에 있어선 여당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종찬, <청년을지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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