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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지로

조국 임명 논란을 통해 본 평등의 가치


조국 현 법무부 장관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자녀의 입시 특혜 논란이 여태 꺼지지 않고 있다. 고려대와 서울대 등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학생들이 기회의 불공정과 박탈감을 호소하며 시위에 나섰고, 학부모들도 말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각의 여론과는 달리 조국 장관의 자녀 특혜 논란은 소위 흙수저 청년들의 삶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계급적 단절만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조국 장관의 딸이 누린 특혜는 전형에 맞춰 어떠한 과외활동이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의 불평등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부모의 재정적 지원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이런 혜택을 당연하게, 공기처럼 누리는 현실에서 이를 계급적 문제가 아닌 도덕적 결격으로만 보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기득권과 보수우파에 쏠려 있다면 설득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득권층은 각종 전형에 관련된 정보를 먼저 더 많이, 더 빨리 획득하는 것으로 입시에서 이익을 본다. 학생의 능력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부모의 사회적 입지와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혜다. 입시에 유리한 과외활동, 유학 등에도 부모의 경제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전형이 복잡해진 탓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공정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는 정시 입시에서 오히려 소득 분위 상위 계층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어떤 과목에 어떻게 더 집중해야 하는지, 유형별 공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교육이 뒷받침하며, 심지어 받은 수능 점수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지원해야 하는지도 사교육의 정보망이 뒷받침한다.

기득권은 곧 계급이고, 계급의 격차는 삶의 격차로 이어진다. 경제력 있는 집에서 태어난 이는 조기유학으로 해외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중도귀국하면 특목고에 특별전형으로, 고교 졸업 후 귀국하면 대입에서 재외국민 특례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 특례전형의 당사자들은 ‘사정상 해외에서 학업을 마쳤을 뿐이며, 해외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의 입시를 준비하는 건 실질적으로 어려우니 이것도 기회의 평등을 맞추는 조정’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런 논리는 자기변호에만 사용되기 일쑤다. 보수적 시각에서의 평등과 공정은 계급적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보다는 고착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보수적 관점에서의 공정은 기회의 평등과 단일한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원 대상만 제한하지 않는다면’ 기회의 평등이며, ‘모든 지원자를 단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절차적 공정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시각 아래서는 더 많이 가진 계급이 명문대에 더 많이 합격하는 것이 당연하고, 환경적 변수를 고려하는 것은 역차별이 된다. 이는 다시 사회적 약자 우대조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지역균형선발 합격자는 ‘지균충’으로 폄하되고, 단원고 졸업생 특별입학 전형자는 ‘단룡인’으로 매도된다. 나는 어렵게 전형을 뚫고 올라왔는데 쉽게 합격한다며, 저런 특별전형 때문에 자신들이 마땅히 차지했어야 하는 합격증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한다. 어느 세상의 이야기일까 싶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와 명문대 학내 커뮤니티에는 이미 이런 글들이 가득하다. 성별 최저비율 할당제에 온갖 성차별적 조롱이 쏟아지는 것도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 장관 딸 논란에 명문대 학생들이 더 크게 반발하는 것도 이 논란이 고작해야 최상위권과 상위권 사이에 존재하는 공정의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아직도 가계를 위해 부모의 자영업장에서 무급가족종사자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청소년이 많으며, 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입시 전형에 몸을 끼워맞추기는 커녕 내신을 따라가고 생기부를 맞추는 것조차 버겁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대학 진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노력과 재능만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과는 달리 환경은 타고난 능력에 우선한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계급의 문제는 입학 후에도 계속된다.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충분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집에서 받을 수 있으면, 부모가 서울에 살거나 서울에 자취방을 어렵잖게 얻어줄 수 있으면, 공부에만 전념하며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다. 어학연수와 단기유학도 가능하고, 무급인턴과 해외여행 등을 통해 경험을 쌓기에도 유리하다. 이는 학점의 차이로, 취업 스펙의 차이로 나타난다. 학비와 생활비까지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해야 하는 저소득층 출신들은 꿈꾸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나마도 장학금이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되면 당장 기득권층 학생들에게서 ‘우리도 넉넉하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저소득층은 빈곤이라는 낙인조차 강탈당하기 일쑤다.


연일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 청년의 분노를, 흙수저의 분노를 들으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흙수저들의 삶과 목소리는 전혀 조명받지 못한다. 실제로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연세대가 시위를 기획할 때는 언론에서 목소리를 실어주지만 지방대 학생들의 성명이나 의견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미약해진 약자들의 목소리에 보수 기득권층이 기생하듯 ‘청년’을 아로새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 사회는 눈에 드러나는 것만 얘기해도 좋을 정도로 가려진 그늘 없이 평등한가?

조국 장관이 평등과 정의를 내세워 온 사람답지 않게 자녀 교육에서 기득권을 누렸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위하는 명문대 학생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보수 인사들은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조국 장관은 우리 사회의 부당한 특혜를 최소한 검찰에서부터 일소하는 것으로써 후회와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고 소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특혜에는 눈감으며 더 큰 특혜를 받지 못함에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이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한 점 도움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이 청년 전체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현실이 우리 사회를 평등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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