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WHO에서 게임에 대한 질환을 공식적으로 ICD에 등록했습니다. 대다수의 언론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반대 입장을 표하면서 산업의 위축을 걱정했고, 게임은 건강한 놀이문화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반면 해외의 경우 걱정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주류입니다. 일본에서는 즉각 게임 관련 4개 단체가 게임에 관련된 질병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해당 문제에 대한 사회적 요청에 대해 과학적인 조사 연구를 실시하기로 하고 연구 결과에 따라 효율적인 대책 마련까지 검토하기로 했죠.
다시 국내의 이야기로 돌아와 문화관광부의 발언을 보면, 반대 입장을 표하는 이유로 과학적 미검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은 중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요. 현재의 게임문화에 일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이유로 게임에 대한 규제가 강해진다면 반대하겠다는 맥락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대체 WHO에서는 어떤 상태를 질병이라고 규정한 것일까요? 이렇게나 큰 논쟁을 불러온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이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기사는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위해 우선 무엇을 질병으로 규정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게임 이용 장애 (gaming disorder)]
게임 이용 장애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시, 다음과 같은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이용 경향을 나타내는 경우로 특징할 수 있습니다.
1. 게임 이용 조절 기능의 저하(예를 들어, 시작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거나, 지나치게 자주 하거나, 할 때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오래 하거나, 자의로 종료하기가 어렵거나, 게임 내 상황을 견디지 못함)
2. 일상이나 삶의 다른 중요한 부분보다 게임 플레이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둠.
3.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 플레이가 줄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함. 가족 및 본인에게 문제를 야기하거나 본인의 사회적, 교육적, 직업적 지위 등에 심대한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동 패턴을 보임.
게임의 이용 패턴은 연속적일 수도 있고 단편적이면서 반복적일 수 있다. 이를 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12개월 이상 분명하게 증상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상기 모든 요건을 충족하며 증상이 심각할 경우 12개월보다 짧은 유지 기간으로도 진단이 내려질 수 있다.
해석하자면, 게임 이용 장애는 엄밀히 말해 게임 자체를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 물질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이용을 질병으로 등재한 것입니다. Disorder를 행위 중독 또는 장애가 아니라 '중독'으로 번역해 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인데, ‘쇼핑 중독’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는 비슷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걸 떠올려 보면 게임에 대한 외부 압력만큼이나 게임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반발도 뜨겁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WHO는 ‘게임 중독’만을 질병으로 규정한 게 아닙니다.
[유해한 게임 이용 (Hazardous gaming)]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게임을 지나치게 오랜 시간 이용하거나, 너무 자주 하거나, 다른 일을 도외시하거나 더 중요한 일을 무시하거나, 게임 자체 또는 게임 플레이를 이유로 위험행동을 하거나, 게임 플레이의 결과가 나쁘거나, 상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본인 또는 본인 주위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명백히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게임 이용을 가리킵니다. 문제가 명백함에도 게임 플레이가 계속되는 경우 또한 종종 있습니다.
게임을 하다 심한 욕설을 하고, 결과를 참지 못해 키보드 등 기물을 부수고, 중요한 약속이 있음에도 게임을 끊고 나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소위 인터넷 게임 커뮤니티에서 자조처럼 올라오는 단골 소재들입니다. 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보다 폭넓게 나타나고 있음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음에도 이 항목은 언론에서나 인터넷 여론에서나 다뤄지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더 반박할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물론 게임 산업 종사자와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게임에 대한 낙인이 강해지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습니다. 이번 ICD 코드 등록을 계기로 국내에서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ICD 등록 이전부터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게임 행위와 주위에 위해를 가하는 게임 행위에 대한 연구가 쌓여 왔으며, WHO의 질병 이용 등재 결정은 이런 맥락의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등재된 질병코드가 게임 이용 장애의 원인을 게임으로 특징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 이용 장애의 원인은 게임 자체 때문일 수도, 게임을 즐기는 문화 탓일 수도, 개인의 환경 탓일 수도,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청년들도,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만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병 코드가 등록된 이상 연구와 과학적 증거는 쌓여갈 것이고, 게임 중 일어나는 혐오 발언과 언어 폭력, 성희롱 등의 악영향이 부각되거나, 경쟁 게임 등에서 발생하는 자기 통제 상실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즐겨 보고 또 직접 방송 스트리머로서 참여하는 유튜브, 트위치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언어적, 감정적 표현 문제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즐겨 왔던 인터넷 게임 문화가 과연 건강한 문화이기만 했는지를 돌아봐야만 합니다.
관계부처도 지금까지 이런 게임 문화 내의 폭력성과 혐오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심의 제도 등 필수 규제를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개선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확률형 아이템을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공통 인식이 EU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게임 대기업들과의 간담회 결과물로써 ‘인터넷 성인 게임의 월 결제한도 폐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게임과 관련된 질병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상황에서 이런 ‘산업 증진책’을 이렇게 시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었는지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닙니다. 게임은 문화입니다. 하지만 문화라고 규정하기만 해서 모든 게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환경으로 가꾸어 나가야만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제작자도, 운영과 판매 주체인 회사도, 이를 관리 감독할 의무를 지닌 국가도, 게임의 소비자인 게이머들도 제각기 조금씩 짊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보수 정권의 역사 속에서 탄압받아 온 게임 산업의 과거가 있기에 WHO의 결정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와서 무시한다고 있는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제라도 게임을 말로만 ‘문화’로 보는 ‘산업’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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