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이며 동시에 예술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이고, 게임 업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기에 진부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정작 이런 주장과는 달리 실제 게임 업계의 자세에서는 그다지 진심을 느끼기 어렵다. 당장 2019년, 집권여당의 김병관 의원이 게임을 법적 문화예술의 정의에 포함시키기 위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게임업계의 선명한 지지를 받지도 못한 채 법안 소위조차 넘기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게임의 질병 등재 논란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랜덤아이템 같은 BM이 청소년의 과소비를 유발한다든지 후킹 요소 등의 리텐션 운영 요소가 게임 이용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진단을 업계에서는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원론적인 반대 입장은 철회하지 않았다. 청소년 대상의 랜덤 아이템 판매 매출이 연간 1조 원을 넘어선다는 이야기가 기사에 실려 나오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규모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은 방기되었다. 이렇게 게임에 부여되는 사회적 의무, 요구를 단순히 ‘압력’으로 해석할 때만 ‘게임은 문화다’라는 반론에 사용된다. 마치 문화에는 정치사회적 요구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듯한 태도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 문화예술 산업은 단순히 사회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안전지대가 아니며 사회적 역할을 기대받으며 동시에 진흥되고 있다. 우선 살펴보면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문예진흥기금이 70년대부터 운영되면서 극장, 미술관, 관광지, 사적지 입장료의 일부를 기금으로 징수했지만 2003년 이러한 일괄적 징수가 위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일괄적 징수가 위헌이었을 뿐 진흥을 위한 기금 마련 자체는 필요했기에 문예진흥기금은 물론이고 몇몇 형태의 진흥 기금이 추가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화발전기금 같은 경우,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하 영비법) 내에 발전기금을 모금할 수 있는 조항이 일몰법의 형태(21년 기한, 14년 기1회 연장)로 존재해 영화 관람료의 3%를 징수하고 있으며, 방송의 경우에도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로부터 광고 매출의 일부를 징수하고 있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의 경우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인터넷 기반 영상공급사업자들에게도 해당 기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개편안이 논의 중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아직 기금이 없는 문화콘텐츠 산업에서도 기금 조성 필요에 대한 요구는 높다. 만화, 출판 등에서 판매액의 일부를 징수해서라도 기금을 마련해 산업을 진흥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게임계에서도 게임 진흥, 특히 인디 게임이나 비주류 장르, 플랫폼의 진흥을 위한 기금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전부터 있어 왔다. 단지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주도하에 조성되어 운영된 적도 없을 뿐더러, 게임에 부과되는 세금이나 기금 등이 철저히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왔을 뿐이다. 게임 중독세라는 추상적인 위협에 대한 과도한 반발을 비롯해, 종교의 십일조와 비교하며 10% 이상의 세금이 징수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까지 온갖 감정의 말풍선만 오고가는 사이, 게임 업계에서 세금이나 기금이 진지하게 논의될 기회는 지금까지 사실상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간에서 회자되는 게임중독세가 무엇인지, 실제로 도입된다면 어떤 형태일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 중독물질인 알코올, 그 중에서도 주세가 가장 높은 소주에는 주세 72%에 교육세 21.6%가 징수되고 있으며 이 중 교육세는 교육 예산 충당을 위한 목적세이지만 주세는 보통세이므로 소주의 목적세율은 21.6%로 볼 수 있다. 세간에서 흔히 얘기되는 ‘중독세’는 목적세이므로 게임에 부과된다면 최대를 21.6%로 잡아도 무리가 없다. 또 하나의 대표적 중독물질인 담배에 붙는 목적세는 준조세 성격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으로, 세율은 18% 정도이다. 재밌는 점은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충당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지닌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의 3%를 문예진흥기금 고갈 해결을 위해 전용하려는 문체부의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게임업계에서도 게임이 문화이며 예술이라고 주장하려 한다면 보다 진정성 있는 움직임을 보일 필요가 있다. 법 개정이 우선이다. 게임이 문화예술진흥법의 분류 안에 편입되면 게임은 문예진흥기금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문체부의 의도대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문예진흥금에 편입된다면 담배에 붙는 목적세를 게임의 진흥에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수혜를 요구하는 만큼 사회적 요구에도 부흥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게임의 판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대기업, 퍼블리셔가 인정해야 하고, 기금의 필요성과 조성 방법부터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주 당 노동시간 52시간 제한으로 신작을 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게임 관련 기금 마련이나 목적세 징수에는 부정적이면서 국가 재원 조달을 통한 진흥 사업은 환영한다면 시민사회로부터 공감받기 어렵다. 10조 산업이라는 게임 업계에서 게임 산업, 나아가 문화예술 산업 전반의 성장을 위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체의 세금도 기금도 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문화예술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없이 미온적인 행보만 보인다면 아무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청소년의 셧다운제 의식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대부분은 예측할 만한 응답이었지만 그 중 미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재밌는 결과가 있었다. ‘전체연령가 서버에서 게임을 하는 우리 미성년자는 밤만 되면 게임을 못하고 학원에 다녀온 다음 저녁 시간에 어렵게 어렵게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 파밍을 하는데, 셧다운제가 적용되는 자정 이후에는 성인들이 쉽게 레벨링과 파밍을 한다는 불만이었다. 뒤늦게 찾아보니, 셧다운으로 미성년자의 접속이 끊긴 자정 이후를 파밍 꿀타임으로 소개하는 게시물도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입장이 달랐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게임이 문화인지 아닌지를 묻는다면 게임 자체와 게임의 향유 모두는 문화의 영역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게임 문화는 모두 같은 모습이었을까? 게임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늘 새롭게 알게 되는 시각이 있고 문화가 있다.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다양한 이면이 존재하고, 동시에 게임이 문화라며 모든 간섭에서 자유로울 것을 요구해 온 사이, 그 뒤에서는 커뮤니티 내 혐오 문화,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는 폭력적 밈(meme)의 무분별한 유통, 욕설과 성차별, 성희롱으로 얼룩진 게임 내 채팅 문제까지 온갖 우리의 문제가 자리잡은 것도 현실이다. ‘여성 게이머는 남성보다 능력이 열등하다’ 같은 명백한 편견, ‘여성 캐릭터의 역할은 남성의 성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것이다’와 같은 관점이 게임 커뮤니티마다 큼직한 여론으로 존재하는 한, 게임이 문화라는 이야기는 향유자 관점에서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게임은 그 자체로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문화로서의 파급력이 크다. 하지만 이 ‘팩트’는 게임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증거임과 동시에 제어되지 않는 게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게임은 끝없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게임의 서사, 구조, 심지어 연출 하나하나와 멀티플레이에서 타 유저와의 접촉 등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사회화를 이끌어낸다. 독재와 군국주의, 인종청소를 하는 세력에 공감과 연민을 할 수 있게 디자인된 게임과 이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관점에서 디자인된 게임은 비슷한 소재와 구조를 갖췄을지라도 사회적 영향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연령 등급이 서로 다르게 매겨져야 함 또한 당연하다.
나아가 게임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비유하고, 다른 관점에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성평등’에 대해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청소년 대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쉽게 비유하니 청중의 이해도가 확 올라갔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에 오랜 기간 성능이 지나치다고 평가받아 온 챔프(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있다고 해봐요. 그런데 여러분은 롤을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그 챔프를 주로 쓰면서 공략을 읽고, 그래서 랭크도 상당히 올리게 됐습니다. 말이 사기 캐릭터지 오랜 기간 사용된 만큼 파훼법도 많이 나와서 전처럼 쉽게 플레이하지도 못하는 등 내 관점에서는 애로사항도 많았죠. 그런데 갑자기 라이엇 소프트(롤의 개발, 운영사)에서 해당 챔프가 게임의 밸런스를 과도하게 해치니, 하향을 하겠다고 공지를 합니다. 여러분의 감정은 어떻게 되죠? 억울하죠. 나는 별로 꿀 빨지도 못했는데 왜 이제와서 사기라며 성능을 조정한다고 하나 싶죠. 하지만 그렇다면 밸런스를 바로잡지 않는 게 맞을까요? 내가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동안 혜택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평소에 하던 게임을 예시로 하는 것만으로도 이해도가 올라가고 관심이 높아진다. 설명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젠더’의 개념 또한 ‘챔프를 선택하는 것’에 비유해 설명하니 청중의 반응이 차원을 달리했다. 내 평소 모습이나 능력, 소위 피지컬 등에서 타고난, 그래서 그 챔프를 하는 게 왠지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생물학적 성’이고, 계량되어 있는 내 능력이나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 집단 내의 필요에 의해 게임 내에서 캐릭터를 고르고 역할을 고르는 것, 소위 국민트리, 국룰 등으로 운용하라는 요구 등은 ‘사회적 압력’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고 싶고, 그럴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젠더’라는 설명은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1시간 남짓한 강연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썩 나쁘지 않았다. 하물며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사회화와 학습이 가능하다면 세간은 게임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바꿀지 충분히 궁금함을 가져도 될 것이다. 세계 유수의 거대 게임회사들이 멍청해서 페미니즘 이슈와 정치적 올바름 이슈를 게임 내에 적극 반영하는 게 아니다.
게임의 이미지 중 일부는 억울한 낙인이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우리 향유자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 게임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판을 낙인으로 간주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 커뮤니티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간주되는지, 외부의 시각을 거울 삼아 숙고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게임은 이미 메인스트림 문화로 인정받고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대해 더 큰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인정받고 싶다면 사회적 요구를 다하고 그 이상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따져서 먼저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게임이 모바일과 온라인에 계속 집중해 돈벌이에 급급하다면 돈 많은 졸부, 심지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기합리화와 면피에만 급급한 자본 취급 이상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게임의 이미지가 나쁜 건 유저를 쥐어짜는 과금 구조와 게임에 대한 충성을 종용하는 후킹 프로세스 때문이기도 하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나쁜 것은 게임 커뮤니티에서 보여지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우리 게이머에게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의 유해성이 어떠한 방향으로든 증명될 수 있다고 그저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유해성이란 결국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하고, 이는 게임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가능성의 반례이기도 하다. 그렇게 게임이 해롭다면 어째서 체험형 학습이 주목받고 다들 그렇게 게이미피케이션을 4차산업의 핵심으로 꼽는 것일까?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에 달한 우리 게임 산업의 현실이, 우리에게 ‘정말 게임이 문화인지’를 지금 심각하게 되묻고 있다.
본 기고는 PNN을 통해 게재된 '우리의 주장처럼 게임은 정말 문화이자 예술일까'의 편집 전 원고에 조금 더 내용을 추가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