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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지로

건전성 규제는 대못이 아니며 스캠은 혁신이 아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수난시대다. 최근 들어서만도 지난 4월 대형 거래소 빗썸에서 143억 원에 달하는 가상화폐가 탈취당했고, 지난달 E모 코인거래소는 대표가 고객 예치금 470억 여원을 횡령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해당 거래소는 제대로 된 거래 행위를 하지 않고, 고객을 추가 모집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폰지사기 형태의 운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계를 과거로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빗썸은 작년에도 300억 원이 넘는 탈취사실이 발생한 바가 있고, 순위권에 들지 않는 작은 거래소로 가면 대표의 잠적 등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마다 심심치 않게 게시되곤 해왔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되는 가상화폐는 등장 이후 한동안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7년 전후로 ‘새로운 투자 시장’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과연 화폐인지, 그 자체로 혁신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경제학적으로 따져도 거래 장부의 신뢰가 가능할 뿐 가치의 원천이 없어, 거래를 통해서만 가치가 유지되는 방식이므로 새로운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가치가 폭락하는 등 시세의 변동이 크다. 실물화폐와 연동되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정도인데 시세의 변동까지 크니 당초 목적대로 거래에 이용되기 어려웠고, 비트코인 거래 서비스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소위 ‘코인 거래’의 대장주 노릇을 하는 수준이다.

이렇듯 결국 ‘현금’으로의 환금이 보장되는 것이 비트코인 가치의 원천이며, 거래 내역이 명확히 보장된다는 것은 가치의 원천이 될 수 없는 허상에 가깝다. 오히려 누군가가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내 비트코인을 사 줄 것이라는 거래 지속, 거래량 증가에 대한 믿음이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과 거래 요인의 거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개념은 비트코인의 후발주자들이 ICO(가상화폐 공개)를 도입하면서 어느 정도 변화되는데, ICO가 IPO(기업공개)와 비슷한 절차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가상화폐를 운영하는 회사의 가치를 마치 주식처럼 가상화폐에 담아내어 가치를 보증하게 되었다.

물론 공공기관 등에 의해 명확한 상장 기준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IPO와 달리 ICO는 아무런 규정이 없는 야생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구체성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백서를 근거로 자금을 모집한 뒤 대표가 증발하는 사기(Scam)가 빈발했고, 사기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기업운영을 하다 도산해 버리는 사례도 빈발했다. 일반 주식회사가 거래소를 통한 일반 주식거래로 자금을 융통하려면 빡빡한 IPO(기업공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사업 유지 능력이 인정되는 반면, ICO는 ‘이걸로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합니다’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부실 가상화폐들을 걸러내기 어려웠고,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왔다.

물론 가상화폐의 근간을 이루는 블록체인은 성장 가능성이 큰 기술이다. 데이터가 다중 미러링을 통해 물리적으로도 분산되어 관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중앙집중식 데이터센터에 비해 해킹이나 물리적 재해 극도로 안정적이며, 여러 기관의 처리가 순차적으로 필요한 증권 거래 같은 경우에도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기존의 결재 시스템에 비해) 검증의 자동화가 가능해 보다 빠른 처리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상화폐’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고리에 대해서는 그 어디서도 당위성을 찾을 수 없다. ICO가 회사의 자금 조달을 쉽게 함으로써 혁신 기업의 성장을 빠르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블록체인을 이용한 이런 혁신적 사례들은 오히려 기반을 탄탄히 다진 기존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블록체인 시스템이 안전해도 블록체인 기반 사업이 ICO를 통해 발행한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거래소가 보안이 취약하니 결국 주객전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에 대해 모든 것은 결국 거대한 사기극(Scam)의 일종이라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ICO는 주식시장에 주식이 상장되는 절차인 IPO(회사 공개)에서 명칭을 차용했지만, 회사 설립 단계 또는 법인격이 갖춰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금을 모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거래소도 증권거래소와 혼동이 가능해 마치 국가 시스템이 거래를 보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규제가 허술하게 적용된 사각지대였을 뿐이다. 가상화폐가 실제로는 화폐라기보다는 주식증권이나 상품증권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화폐라는 말을 이용한 것부터 대중의 착오가 유발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중에게 익숙한 명칭을 사용해 신뢰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얻기 어려운 가치 평가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칭의 문제’는 다른 소위 ‘혁신 산업’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자율주행에 대한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다. 실제로도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을 비롯해 많은 반자율주행 탑재 차량이 판매되고 있으며 유튜브 등에는 ‘알아서 스스로 운전하는’ 오토파일럿에 대한 실제 체험 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만이 현실이라면 오토파일럿 에러로 인한 사망사고가 연달아 발생했을 턱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재의 반자율주행은 운전자를 ‘보조’하는 장치일 뿐 실제로 자율주행 인공지능은 탑재되어 있지 않다. 물론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상용화가 가시되어 있지도 않다. 운전자 사망 문제에 대해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방심한 운전자의 과실’이라고 항변하는 테슬라를 보면 결국 오토파일럿, 자율주행이라는 용어 또한 허상이며 대중의 오인을 고의적으로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공유경제의 사례도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의 사업 모델은 ‘공유경제’로 불리면서 마치 ‘내구재를 한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보유하거나 서로 빌려 쓰는 개념’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유경제의 개념에 부합한다기보다는 기업이 사업에 필요한 유형자산(우버의 경우엔 자동차, 에어비앤비의 경우엔 숙박업소 등)을 획득하지 않고,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무자격자로 분류되던 소유주(우버의 경우에는 일반 운전자, 에어비앤비의 경우에는 주택 소유주 및 소유 회사)와 이용자를 알선함으로써 탈법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업모델에 가깝다. 두 회사는 실제로도 발생하는 노동자 및 소비자의 피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책임 또는 리스크 회피적 사업 모델인 게 아니냐는 비판을 자주 받고 있다.

현실에서 혁신을 강조하는 이들은 현재의 시장 규제와 각종 제도들이 마치 혁신을 옭아매는 대못인 것처럼 주장하곤 한다. 이들은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운수업 전체에 어떠한 영향이 갈지에 대한 고려 없이 타다 같은 새로운 모델에 박수를 보내며 택시의 합승 운영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경제적 문제로 보면, 공급 과잉으로 초래되고 있는 서울의 택시 문제에 (시장 영향력 확대를 위한) 타다의 적자 경영이나 결국 총 이용금액 감소를 초래하게 될 택시 합승 운영을 결합하는 것이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의 복잡한 작동에 의해 어쩌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런 요행만을 바라는 것은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시장주의는 결국 시장의 흐름이 보편적 절대성을 가진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내에는 자본의 크기, 정보의 격차 등으로 인해 불거지는 여러 불균형 문제가 있고, 합리성 가정과는 달리 비합리적 주체들이 많아 시장의 조정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각종 건전성 규제와 정책들이며, 이는 시장의 역동성을 조금 떨어져 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지나친 과열로 인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안전장치가 되어 주기도 한다.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및 ICO 관련 규제가 지금 와서 보면 결국 옳은 결정이었듯 말이다.

결국 건전성 규제는 대못이 아니며 스캠은 혁신이 아니다. 혁신으로 포장된 스캠은 수많은 투자 피해자를 양산하고, 합리적 규제를 피해가는 사업 모델은 청년 일자리를 열악하게 만든다. 자본이 움직인다고, 자본이 선택했다고 그것이 바로 혁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한 포장이나 당장의 느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확실한 기술적, 경제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4차산업의 혁명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김환민 <청년을지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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